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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늘 고민합니다.

벌레들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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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때 담임선생님은

아프리카에 가면

교실에서부터 복도를 지나

운동장까지 이어질 만큼

큰 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뱀의 난폭함과 무시무시한 생김새 까지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또, 운동장 축구골대에서 반대편 골대까지

한 번에 닿을만한 엄청난 크기의

개미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가끔 그 개미와 뱀이 싸움을 벌이는데,

그 격렬한 전투를 상세히 묘사해 주셨습니다.



이 후 30년이 지난 지금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은

자연 다큐멘터리입니다.


특히 미지의 세계,

알려지지 않은 생물들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보통의 어른들은 아이들만큼

곤충이나 벌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고

어릴 땐 좋아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싫어졌습니다.

줄줄 외던 그 이름들도 가물가물합니다.


징그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은 관심이 없어진 것입니다,

곤충학자가 아닌 이상,

내 인생과는 상관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그것들을 봐도 아무런 감흥이 생기지 않고

그것들이 나에게 줄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냥 귀찮은 것들입니다.



그럼 메뚜기, 잠자리를 잡으러 다니고

뒷동산을 뒤지며 온갖 벌레들을 손에 쥐던

그 때 그 아이의 인생은

딱히 그것들과 상관이 있어서였을까요?


과연 그 벌레들은

정말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벌레 같은 것들'인 것일까요?



제가 곤충이나 벌레를 보면 

아직도 사진을 찍는 이유는

그들을 발견하는 찰나,

특별한 심리적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치

매일 똑같은 세상을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통할 수 있게 해주는

관문 같은 것들입니다.



벌레들이 사는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가치와 의미,

스케일과 섭리가 존재하는 곳이겠지요.


그리고 또 다시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

어린 시절 선생님의

그 이야기 이후로 동경하게 된

아프리카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습니다.



벌레들은 이렇게 가끔

인간으로만 살고 있는

나의 단순함과 무지, 각박함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곤충과 벌레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들의 세상이 자신들의 세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신비로운 세상,

미지의 세상,

그 곳에서는

나도 잠자리처럼 날 수 있고

메뚜기처럼 점프할 수 있고

물방개처럼 헤엄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세상은

내가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곳이고,

모든 세상은

내가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곳이니까요.



벌레가 귀찮아지기 시작하는 시점은

바로 무지한 어른이 되는 순간입니다.


흔히들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창의력, 다양성, 수평적 사고,

thinking out of the box 등의 능력들이

본격적으로 감퇴하기 시작하는

아주 안타까운 순간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되도록 많은 곤충과 벌레들을 관찰해보세요.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틈틈히 공부해보면 어떨까요?



아이에게는

벌레의 이름을 아는 아빠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가로막고 선 사람이 아니라

그곳으로 인도해주는,

따르고 싶은 바로 그런 사람!